던전 요리사의 자존심을 건 한 그릇, 더미식 메밀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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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요리사 그릴로는 요즘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의 레스토랑, ‘그릴로의 화염 주방’은 한때 미식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화룡의 심장 스테이크’, ‘미노타우로스의 갈비찜’ 같은 강력하고 자극적인 요리로 명성을 떨쳤지만, 모든 것은 내 옆 가게, ‘차원 상점’이 문을 연 후로 바뀌었다. 손님들은 더 이상 그의 복잡하고 강렬한 요리를 찾지 않았다.
“루인! 오늘이야말로 자네와 담판을 지어야겠어!”
결국 폭발한 그릴로가 가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과 분노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길드에서 감정을 의뢰받은 정체불명의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이게 대체 뭐길래, 내 3일 밤낮으로 우려낸 ‘히드라 수프’를 밀어내는 거냐고! 이건 요리에 대한 모독이야!”
나는 잠자코 그가 내민 꾸러미를 풀어보았다. 잘 마른 국수 다발, 검은 액체가 담긴 주머니, 그리고 희고 푸른 가루가 담긴 작은 봉투들. 전생의 기억이 왈칵 쏟아졌다. 여름날의 태양, 시원한 바람,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던 상쾌함. 이건… 메밀소바였다.
“그릴로, 이건 모독이 아닐세. 오히려 자네가 잊고 있던 요리의 본질을 일깨워 줄 물건이지.”
“허풍 떨지 마! 이딴 건조하고 생기 없는 것들로 뭘 하겠다는 거야!”
나는 그의 윽박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정확히 5분을 재었다. 그릴로는 “그게 다야? 비법 주문이나 마법 약초도 없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면이 익자마자 나는 재빨리 얼음물에 헹궈냈다. 면발이 순식간에 수축하며 탱탱한 생기를 되찾는 모습에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뜨거운 요리의 생명인 온기를 스스로 내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나는 대답 대신, 검은 액체, 즉 쯔유를 그릇에 붓고 차가운 물과 섞었다. 그러자 훈연된 가다랑어포의 깊고 그윽한 향이 터져 나오며 가게 안을 채웠다. 그릴로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마지막으로 간 무와 김가루, 쪽파, 그리고 화룡의 눈물처럼 톡 쏘는 와사비를 올리자, 경이로운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자, 맛보게. 자네가 그토록 경멸하던 ‘요리의 본질’을.”
그릴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는 먼저 국물 맛을 보았다. 단순한 짠맛이 아니었다. 깊고 진한 감칠맛 뒤에 따라오는 레몬의 은은한 상쾌함. 그는 난생 처음 겪는 맛의 균형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어서 면을 한 입 가득 넣었다.
”…!”
그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쫄깃하다 못해 탄력 있는 면발이 혀를 휘감았고, 시원한 소스가 무더위에 지친 정신까지 맑게 씻어내는 듯했다. 이것은 맛의 폭력이 아니었다. 완벽한 조화였다. 그는 자신의 요리가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자기 소리만 내지르던 소음이었다면, 이 소바는 완벽한 지휘자를 만난 교향곡 같다고 느꼈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운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고개를 든 그의 눈에는 분노 대신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내가… 내가 졌네, 루인. 이건… 이건 차원이 다른 요리야. 나는 그저 강한 재료들을 섞어 더 강한 맛을 내려고만 했어. 하지만 자네는… 가장 단순한 것들로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군.”
그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 요리법을 알려주게. 아니, 자네의 철학을 가르쳐주게. 얼마면 되겠나?”
나는 씩 웃으며 감정서를 작성했다. 한 명의 완고한 요리사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값진 순간이었다.
📄 감정서 - 모델명: 더미식 메밀소바
- 소환 차원: 지구 / 대한민국 / 21세기
- 항목별 분석:
- 면의 품질: ★★★★★ (100% 국내산 메밀을 자가제면 방식으로 만들어, 바람에 말려 쫄깃함과 탱탱함이 일품)
- 소스의 깊이: ★★★★★ (훈연 가다랑어포, 다시마, 표고버섯을 18시간 우려내 깊은 감칠맛과 레몬의 상큼함이 조화로움)
- 구성의 완벽함: ★★★★★ (간 무, 김가루, 쪽파, 와사비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이세계에서도 전문점의 맛을 완벽히 재현)
- 조리의 간편성: ★★★★☆ (5분 조리로 완성. 단, 불 조절과 찬물 헹굼의 숙련도가 맛을 좌우함)
- 예상 시장가: 12,000 마르체니 (2인분 기준)
- 등급: [우수]
- 루인의 한줄평: “요리에 재능이 없다면, 재료에 투자하라.”